[활동소식][집 밖에서 북적북적] 그(의) 가정 : <집 밖에서 집을 찾다>가 나에게 준 용기

2025-02-03

집 밖에서 북적북적 코너에서는, <청소년 주거권 수다회, 3년의 기록_집 밖에서 집을 찾다>, <청소년 주거권 수다회, 희곡_내 숨이 내 발등에 닿을 때> 책을 읽은 독자들이 남겨준 후기를 연재합니다. 도란도란 모여 청소년들이 수다를 나누었던 말들에 이어, 끄적끄적 기록한 독자들의 후기들이 연결되어 갑니다. 청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각자의 마음에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요? 모두의 주거권으로 연결되는 투쟁의 길을 함께 이어가봅시다!


그(의) 가정 : <집 밖에서 집을 찾다>가 나에게 준 용기

글쓴이 : 찰리


텀블벅으로 책을 구매할 때까지만 해도 이토록 제 마음을 파고드는 독서가 될지 몰랐습니다. 저는 어느덧 청소년 부모세대의 나이에 가까워졌고, 청소년기에 탈가정을 시도해본 적도 없습니다.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싶은, 그러나 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삶이자 이야기일 거라고 예상했어요. 예상을 빗겨 간 독서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 장 한 장 읽으며, 제 마음과 맞닿는 마음들에 밑줄을 그었어요. ‘그 가정’에서의 삶, 탈가정을 고민했던 이유들, 그리고 뒤늦게 ‘집 밖’으로 나오고서야 보이거나 깨달은 부분을 적어보았습니다.


‘마치 감옥살이 같았어요.’_<집 밖에서 집을 찾다>, 41p

최근 엄마와 같이 집에서 잠을 잤습니다. 이번 엄마의 방문이 특별했던 이유는 하룻밤을 주무시고 가신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자매들이나 옛 직장 동료들끼리 여행을 가거나 잠깐 식사 정도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외출하는 일이 없는 분이 공식적인 ‘외박’을 한 셈이죠. 남들에겐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엄마에겐 (그) 집을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하나의 사건처럼 돼버렸습니다.

엄마가 ‘외박’이라는 소소한 ‘일탈’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아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했으니까요. 아빠는 엄마가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만큼 의존적인데도, 뭔가 불만족스러우면 불같이 화를 냅니다. 토라진 심기는 금방 풀릴 때도 있지만, 물리적인 폭력을 동반할 때나 언성이 높아진 날엔 집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각됩니다. 이렇게 얼어붙은 분위기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눈치 보게 만들고, 평소 아빠가 탐탁치 않아 했던 행동을 실행해야 할 때는 더 많은 용기와 결단을 필요하게 합니다.

숨 막힐듯한 긴장을 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누군가의 있지도 않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전부터 엄마는 ‘미안하다. 내 잘못이다, 다음부턴 안 그러겠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이때 다른 가족들이 엄마 편을 들면 상황은 더 악화 됩니다. ‘자식들한테 더는 더러운 꼴을 보이기 싫다고, 혹은 내 팔자가 기구하다고, 혹은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 말하며 오늘도 엄마는 억울함과 분노를 삼킵니다.

 

‘네 맘대로 할거면 그냥 나가벼려!’_39p

오래 전부터 (아빠의)집을 나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나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 때문은 아닙니다. 차라리 폭력이 나를 향했으면 마음은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살기’가 느껴질 정도의 공포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그런 순간들은 대부분 의도치 않게 찾아왔고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피해자를 옆에서 무력하게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방패막이 역할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고, ‘삐친’ 아빠를 달래어 최악의 상황만은 모면하려는 관계의 악순환은 계속 됐습니다.

비폭력적인 대화로 가부장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유무형의 ‘폭력’이었고, 시한폭탄을 다루듯 조심스레 의중을 살피며 말을 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쨌든 ‘본인은 잘못 없음’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를 합의 가능한 주체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큰 소리 내는 폭력적인 사람에 대한 거부감은 커져만 갔고, 절대로 그런 사람만은 되지 않겠다 다짐하면서도, 결국은 나 역시 그의 자식이란 사실이 원망스러웠으며, 항상 스스로를 검열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제가 아빠와 상종도 안 하는 것 같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혈연가족 중 단둘이 여행을 가장 많이 간 사람도 아빠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가장 먼저 아빠를 호출했습니다. 설득보다는 상대의 체면과 권위를 세우기 위한 형식적 목적이었지만,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사람은 싫어도 전략적으로 아빠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문제 없는(것처럼 보이는) 날들이 지나면서 정말 뭐가 문제인지도 희미해졌습니다.

 

‘너무 많이 참다 보니 나중에는 화를 내야 할 때와 내지 말아야 할 때가 구분이 안 되더라고요.’_97p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며 집을 나왔고, 어느덧 혼자 산지도 7년차가 됐습니다. 말이 혼자지 ‘가족’들에게 (특히 엄마에게) 의존적인 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꽤 자주 연락을 주고받고, 수시로 왕래하며 대소사를 함께합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직도 밑반찬을 비롯한 여러 식료품을 엄마에게 의지해 공급받고 있습니다. 이런 내가 정말 혼자(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나 혼자 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집 자체도 온전히 ‘내 집’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오래전 엄마의 권유로 청약저축에 가입하게 됐고, 한동안은 엄마가 직접 저축을 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다 지인의 권유로 괜찮은 조건의 임대아파트 모집공고를 보고 신청하게 됐고, 운이 좋게 당첨되어 혼자 살기에 과분할 정도로 쾌적한 곳에서 지내게 된 것입니다. 내 삶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것들 대부분의 시작은 이미 내가 의도하거나 계획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집을 나와서 혼자 살겠다는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엄마를 두고 나왔다는 죄책감은 있지만 ‘내 집’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자존감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휴일에 늦게 일어나거나 씻지 않는다고, 설거지를 그때그때 안 하거나 분리수거 통이 넘친다고, 청소를 못 해서 집이 지저분하거나 화장실이 더럽다고 특별히 뭐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리, 청소, 빨래 등 혼자 살며 생긴 생활 근육들을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을 집에 초대할 때, 미션 수행하듯 몰아서 쓰고 나면 뿌듯한 쾌감마저 느껴집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내가 엄마랑 어떻게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_51p

엄마와 하룻밤을 보내고 같이 점심을 먹으며 슬쩍 운을 떼 보았습니다. 그동안 말로만 가자고 했던 둘만의 여행을 진짜로 가자고요. 천천히 생각해보자는 식으로 확답을 피하셨지만, 망설임이 너무 이해가 되어서 당장은 더 강하게 말씀드리진 않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빠와의 일을 엄마는 숨기려고만 합니다. 말하기도 어렵고 듣기도 힘든 이야기를 질문한다는 게 조심스러우면서도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자꾸 이런저런 화두를 던져 봅니다. 그러다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엄마에게 건넸습니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고, 이렇게 살 순 없겠다고 느껴지면, 언제든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요. 적어도 이 집, ‘우리 집’에는 엄마의 지분이 충분히 있다고요.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건 새로운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지금의 집이 없었다면, ‘그 가정’에서 맺었던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고민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탈출이 필요한 엄마에게 손을 내밀 수조차 없었겠지요. 안정된 주거 공간은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에만 늘 고여있던 말을 엄마에게 건넬 수 있었던 건 이 책 덕분입니다. 탈가정한 청소년분들에게 깊은 공감과 존경을 보냅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다시 한번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

청소년이 안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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