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 주거119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곁에서 주거 및 삶을 함께 돌보고 지원할 수 있는 곳들과 협력해서 지원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번 청소년 주거지 탐방 현장르포는 주거119를 하면서 연결되었던 지원체계들과의 역동 속에서 남았던 마음들을 나누고자 온의 활동가 시연이 일기 형식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주거지원을 하는데 있어서 여전히 난망함 속에 헤메이며 시행착오를 함께 겪어가고 있습니다. 일기장에만 남겨둘까 고민하던 글을 꺼내며 다소 우려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한 생각을 꺼내고 나눌 때에 더 나은 대안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떨리지만 현장르포에 글을 담아봅니다. |
1. 첫번째 일기
‘청소년 주거119’ 신청서에 새로운 이름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옆에 쓰여진 낯선 이름의 쉼터. (119신청서에는 어떤 청소년 지원기관을 통해 알게 되었는지 적는 곳이 있다. 물론 안 적어도 되지만 연계 기관과 함께 청소년을 잘 지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주거119를 본격적으로 홍보한 상황도 아니었고, 평소에 온이랑 연결되어 있는 쉼터도 아니었기에 어떻게 이 사업을 알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다.
“안녕하세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입니다. 주거119를 어떻게 알고 청소년분에게 추천해주셨는지 궁금해서 전화드렸어요~”
일시 쉼터의 특성상 오랜 기간 지낼 수 없을뿐더러*, 청소년의 상황상 단기/중장기 쉼터에 입소하는 것도 어렵다고 판단되어 다른 지원을 찾던 중 이런저런 검색 끝에 주거119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 얼마나 반가운 만남인가. ‘쉼터에 있을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지, 뭐. 개인이 쉼터에 있을 수 없는 게 문제지 우리 책임은 아니잖아.’라며 외면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청소년에게 이후 대안을 연결해 주려던 실무자의 간절함이 우리의 만남을 연결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연결들이 더 얽히고 정교해져서 더 많은 청소년에게 집이 연결되면 좋겠다.
*일시쉼터는 3~7일간 머무를 수 있다.
#반가움 #연결 #포기하지 않고 대안을 찾으려는 애씀
2. 두번째 일기
시설은 집이 될 수 없다며 탈시설을 외치는 온이지만… 그럼에도 만나는 청소년에게 시설 입소를 권유할 때가 종종 있다. 주거119로 지원할 수 있는 보증금 및 월세 금액이 많지 않아 구할 수 있는 집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뿐더러, 청소년의 나이 및 조건과 상황에 따라서 시설에 입소하는 것이 이후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할 때 더 유리하게 작용하거나 (당장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규칙이 힘들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숨 막혀서’, ‘시설 쌤이랑 사이가 안좋아서’ 라며 이미 한 차례 시설을 거절했던 청소년에게 이런저런 설득으로 시설 입소를 힘겹게 권하곤 한다. 나와 동료들은 그래도 입소가 가능한 시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전화를 한다.
‘혹시 지금 입소 가능할까요?’
한참을 설명하고 되물으며 통화를 끝내고 마주하는 마음은 뭐랄까…허탈함. 막막함. 답답함. 분노. 속상함... 그 어딘가에 머문다. 밤에 일하면 입소 불가*, 지병이 있어서 약을 먹어야 하는 청소년이 약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입소 불가, 트랜스젠더 입소 불가, 규칙을 어긴 과거 이력이 있으면 입소 불가….
그럴수록 더 안전하게 보호가 필요한 것 같은데 거절 이유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이런 거절을 그동안 청소년들은 수없이 들어왔겠지 싶은 마음에 화나는 마음도 조심스러워지는 지경이다. 한번은 청소년과 주거 지원을 위해 상담을 하다가 시설의 통금 시간을 몇 분 늦은 일이 있었다. 그날로 청소년은 통금을 어긴 입소생이 되었고 몇 일간 외출 금지령을 받았다. 놀다가 늦은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아름다운 봄날이었는데, 며칠 후 다시 만난 청소년은 시설에 갇혀 있느라 바깥세상에 이렇게 벚꽃이 핀 줄 몰랐다고 했다. ‘그게 싫으면 퇴소하던가!’ 시설의 대답이었다.
*일을 구하기 어려운 청소년들은 상대적으로 경쟁이 적은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설 입소 누가 할 수 있나 #시설이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지
3. 세번째 일기
청소년과 함께 행정복지센터에서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고 돌아오는 길,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은 ‘가정폭력으로 인한 입소’ 한 문장이 담긴 시설입소확인서 받아 제출하기다. 청소년이 부모와 왜 가구 분리가 필요한지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찰에 가정폭력 신고한 이력이 없어? 싶을 수 있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시설을 이용했으니, 서류를 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가정폭력은 없었는데요.”
“상황은 아는데 그걸 가정폭력이라고 쓰긴 어려워요.”
잠깐. 이게 무슨 말이지?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는 말을 듣고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났다. 몇 개월 뒤 찾아간 집에는 자신의 옷과 물건들이 다 버려져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가정폭력이 아니란 말인가? 피멍이 들고 팔다리가 부러지게 맞아야지만 폭력인 걸까? 어느 날 갑자기 사장님이 ‘당신은 해고에요.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고 한다면 부당해고로 신고하지 않으시겠어요? 심지어 이건 보호해야 하는 법적 보호자가 살던 집을 빼앗고 내쫓은 거라고요!! 라고 시설 실무자에게 말하고 싶었다.
아… 가정폭력의 정의부터 다시 논해야 하는 지경이라니. 앞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난관이 얼마나 더 멀고 험난할까. 긴 설득과 설명 끝에 기관에서 논의해 보겠다는 말을 듣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내가 얼마나 불쌍하고 힘들었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며 스스로 증명해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넌 아직 사회가 인정해 줄 수 있는 힘든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그러니 살길은 알아서 찾아’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을 청소년의 지나온 삶이 고스란히 그려졌다. 억울해. 너무 억울해. 억울함이 깃든 분노가 밀물처럼 몰려와 나를 덮쳤다. 억울함을 씻겨 보내기라도 하는 듯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폭력의 기준은 누가 정했나 #그 정도는 가정폭력이 아닙니다
4. 네번째 일기
각 지자체마다 임시 주거지원 사업이 있다. 긴급한 상황이 생겨 주거 상실 위기에 놓인 가구에 임대주택을 임시로 공급하는 제도이다. 온은 청소년과 함께 A 지역에서 이 지원제도를 신청해 보았다. 주거복지센터에서 1차 상담을 통해 주거 취약에 놓인 사람인지를 확인한다. 이후 지자체 담당 공무원과 미팅을 통해 선정 절차를 거친다. LH와 지자체가 주거 계약을 한 집이기 때문에 사실상 미성년자 주거 계약도 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다. 게다가 아주 적은 비용의 금액 정도만 공과금 용도로 내면 되니 비록 임시거처이기는 하지만 거리, 시설, 고시원이 아닌 집에서 지내며 다음 거처를 준비할 수 있는 셈이다.
이 집에 들어가기까지 다양한 곳들과의 협업과 소통이 필요했다. 주거복지센터, 지자체 담당 부서 공무원, 행정복지센터, 청소년자립지원관 까지. 그 시간을 보내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얻은 것은 눈치껏 상대가 원하는 답을 해주는 협상의 기술이었다. 대게는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거나, 앞으로도 뾰족한 대안이 없음을 증명하며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자립 의지는 그 누구보다 강력하여 잘 살아낼 수 있음을 어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다가 ‘불안정한 위기에 놓인’ 사람이 혼자 살아가는 것에 대한 위험과 불안에 대해 괜찮은 건지 검증하고 싶어 하는 것이 느껴지면 곁에서 사례 지원하는 기관들이 잘 챙겨보겠다고 부지런히 설명한다. (지자체 미팅에서 ‘저희 사업으로 지원받다가 자해/자살 사건이 생기면 아주 곤란해요.’ 라는 염려를 500번은 들은 것 같다…) 그러나 그 설명의 톤을 아주 세밀하게 가져가야 한다. 안그러면 ‘이미 지원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이 집이 꼭 필요한가요?’라는 어퍼컷의 질문으로 되돌려 맞게 된다. 그럼 ‘저희는 공적 지원 시스템이 아니고… 임시로 고시원만 아주 조금 지원할 수 있고…’ 다시 도돌이표가 시작된다. 지난했던 청소년의 삶이 고작 서류 몇 장으로 평가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최종 선정이 되는 분위기가 되었길래 ‘혹시 집에 에어컨이 있을까요? 올해 여름이 너무 덥다고 해서요…’ 라는 질문에 ‘이런 집에 에어컨 같은 걸 바라시면 안 되죠. 요새 에어컨 있어도 전기세 때문에 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요.’라는 대답을 듣고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어 회의실을 나왔다. 에어컨이 파워 냉방으로 켜져 있어 싸늘한 기운이 가득했던 그 회의실을.
입주하기 전, 집을 둘러보고 왔다. 버스에서 내려 언덕을 한참 올라가 마주한 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케케묵은 먼지와 온갖 벌레들의 잔해들이 가득했다. 싱크대 위 선반에는 무려 2년 전의 도시가스 검침일 표가 붙어있었다. 집이 필요한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이 집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공가로 있었던 것일까. 걱정과 염려만 가득한 채 지원하기를 주저하거나 거절당했던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그럼에도 일단 살아보기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몇 달 뒤, 덧붙이는 이야기. 또 다른 청소년과 동일한 지원을 신청했다. 지자체는 서류만 보고 미팅 자체를 거절했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임시주택 거주 연령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성년자가 거주했던 선례도 있었음을 설명하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야 미팅을 할 수 있었다. 답답했던 미팅이 끝나고 최종 미선정 결과 통보를 받았다. 국가에 거절당한 청소년은 다시 또 집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 빈 집은 누굴 위한 집인가요 #무슨 걱정이 오만가지 #이젠 해보자. 살아보자
5. 다섯번째 일기
이사를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사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전에 살던 곳에서 짐을 정리해야 하고, 새로 들어갈 집은 청소하고 짐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서 가족, 친구와 같이 이사하고 나면 고생한 기념으로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시켜 나눠 먹는 것 아닐까. 주거119를 하면서 사업비 예산에 ‘이삿짐 운반 차량’ 비용을 책정해 두었지만, 아직 한 명도 그 돈을 사용한 적이 없다. 청소년이 가지고 오는 짐은 대게 가방 1~2개가 전부이기 때문에 이삿짐 차량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비누 받침대, 화장실 슬리퍼, 라면 끓여 먹을 냄비, 빨래 건조대까지… 다이소에서 한바탕 쇼핑을 하고 새로운 집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는다. 입주하는 집도 구석구석 청소한다. 코인세탁기를 찾아 이불도 빨아본다. 도시가스와 인터넷도 새로 연결한다. 전입신고도 하고 집 근처 마트와 편의점은 어디 있는지도 알아둔다. 이삿짐 차를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사란 혼자 하기에 너무 막막하고 벅찬 일임은 틀림없다.
한 청소년 지원기관에 이사와 주거 유지 지원을 요청했다가 “이사와 청소는 혼자 하는 거죠.”라는 답변을 듣고 난 이후로 청소년 지원기관에 이사를 함께 하자고 요청할 때면 또 거절당할까 봐 가끔 떨린다. (다행히 다른 기관들에서 함께 해주어서 그래도 요새는 북적북적 여럿이 이사를 한다.)'자립은 혼자 힘으로 해내는 것이고 지원 기관은 그 방법을 알려주거나 스스로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조력하는 곳이다. 처음부터 함께 하면 의존도만 높아져서 경계해야 한다.'라며 많은 지원의 경험에서 도출해 낸 결론이라는 실무자의 말에,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곳은 ‘청소하는 방법’이 설명된 영상 링크를 보내거나 필요한 물품을 온라인으로 배송시켜 준다. 우리는 곰팡이 제거제와 바퀴벌레약을 사 들고 집에 가서 청소를 같이하며 ‘이렇게 저렇게 정리하고 청소하자’라는 잔소리를 한참 하고 온다. 얼마 전에는 며칠째 박스를 뜯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던 선풍기를 함께 조립했다. 지원 기관에서 온라인으로 배송시켜 준 자립 물품이었다.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자립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 어딘가에서 보고 끄덕였던 문장이 생각난다. 의존할수록, 더 많이 기대고 의지할수록 삶을 더 잘 살아가고 싶은 몸도 마음도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자꾸 해주면 버릇되고 의지만 해요 #처음부터 척척박사가 어디 있나 #걱정하는 의존의 정도는 뭘까 #자립과 의존
1. 첫번째 일기
‘청소년 주거119’ 신청서에 새로운 이름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옆에 쓰여진 낯선 이름의 쉼터. (119신청서에는 어떤 청소년 지원기관을 통해 알게 되었는지 적는 곳이 있다. 물론 안 적어도 되지만 연계 기관과 함께 청소년을 잘 지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주거119를 본격적으로 홍보한 상황도 아니었고, 평소에 온이랑 연결되어 있는 쉼터도 아니었기에 어떻게 이 사업을 알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다.
“안녕하세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입니다. 주거119를 어떻게 알고 청소년분에게 추천해주셨는지 궁금해서 전화드렸어요~”
일시 쉼터의 특성상 오랜 기간 지낼 수 없을뿐더러*, 청소년의 상황상 단기/중장기 쉼터에 입소하는 것도 어렵다고 판단되어 다른 지원을 찾던 중 이런저런 검색 끝에 주거119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 얼마나 반가운 만남인가. ‘쉼터에 있을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지, 뭐. 개인이 쉼터에 있을 수 없는 게 문제지 우리 책임은 아니잖아.’라며 외면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청소년에게 이후 대안을 연결해 주려던 실무자의 간절함이 우리의 만남을 연결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연결들이 더 얽히고 정교해져서 더 많은 청소년에게 집이 연결되면 좋겠다.
*일시쉼터는 3~7일간 머무를 수 있다.
#반가움 #연결 #포기하지 않고 대안을 찾으려는 애씀
2. 두번째 일기
시설은 집이 될 수 없다며 탈시설을 외치는 온이지만… 그럼에도 만나는 청소년에게 시설 입소를 권유할 때가 종종 있다. 주거119로 지원할 수 있는 보증금 및 월세 금액이 많지 않아 구할 수 있는 집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뿐더러, 청소년의 나이 및 조건과 상황에 따라서 시설에 입소하는 것이 이후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할 때 더 유리하게 작용하거나 (당장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규칙이 힘들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숨 막혀서’, ‘시설 쌤이랑 사이가 안좋아서’ 라며 이미 한 차례 시설을 거절했던 청소년에게 이런저런 설득으로 시설 입소를 힘겹게 권하곤 한다. 나와 동료들은 그래도 입소가 가능한 시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전화를 한다.
‘혹시 지금 입소 가능할까요?’
한참을 설명하고 되물으며 통화를 끝내고 마주하는 마음은 뭐랄까…허탈함. 막막함. 답답함. 분노. 속상함... 그 어딘가에 머문다. 밤에 일하면 입소 불가*, 지병이 있어서 약을 먹어야 하는 청소년이 약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입소 불가, 트랜스젠더 입소 불가, 규칙을 어긴 과거 이력이 있으면 입소 불가….
그럴수록 더 안전하게 보호가 필요한 것 같은데 거절 이유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이런 거절을 그동안 청소년들은 수없이 들어왔겠지 싶은 마음에 화나는 마음도 조심스러워지는 지경이다. 한번은 청소년과 주거 지원을 위해 상담을 하다가 시설의 통금 시간을 몇 분 늦은 일이 있었다. 그날로 청소년은 통금을 어긴 입소생이 되었고 몇 일간 외출 금지령을 받았다. 놀다가 늦은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아름다운 봄날이었는데, 며칠 후 다시 만난 청소년은 시설에 갇혀 있느라 바깥세상에 이렇게 벚꽃이 핀 줄 몰랐다고 했다. ‘그게 싫으면 퇴소하던가!’ 시설의 대답이었다.
*일을 구하기 어려운 청소년들은 상대적으로 경쟁이 적은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설 입소 누가 할 수 있나 #시설이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지
3. 세번째 일기
청소년과 함께 행정복지센터에서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고 돌아오는 길,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은 ‘가정폭력으로 인한 입소’ 한 문장이 담긴 시설입소확인서 받아 제출하기다. 청소년이 부모와 왜 가구 분리가 필요한지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찰에 가정폭력 신고한 이력이 없어? 싶을 수 있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시설을 이용했으니, 서류를 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가정폭력은 없었는데요.”
“상황은 아는데 그걸 가정폭력이라고 쓰긴 어려워요.”
잠깐. 이게 무슨 말이지?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는 말을 듣고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났다. 몇 개월 뒤 찾아간 집에는 자신의 옷과 물건들이 다 버려져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가정폭력이 아니란 말인가? 피멍이 들고 팔다리가 부러지게 맞아야지만 폭력인 걸까? 어느 날 갑자기 사장님이 ‘당신은 해고에요.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고 한다면 부당해고로 신고하지 않으시겠어요? 심지어 이건 보호해야 하는 법적 보호자가 살던 집을 빼앗고 내쫓은 거라고요!! 라고 시설 실무자에게 말하고 싶었다.
아… 가정폭력의 정의부터 다시 논해야 하는 지경이라니. 앞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난관이 얼마나 더 멀고 험난할까. 긴 설득과 설명 끝에 기관에서 논의해 보겠다는 말을 듣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내가 얼마나 불쌍하고 힘들었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며 스스로 증명해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넌 아직 사회가 인정해 줄 수 있는 힘든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그러니 살길은 알아서 찾아’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을 청소년의 지나온 삶이 고스란히 그려졌다. 억울해. 너무 억울해. 억울함이 깃든 분노가 밀물처럼 몰려와 나를 덮쳤다. 억울함을 씻겨 보내기라도 하는 듯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폭력의 기준은 누가 정했나 #그 정도는 가정폭력이 아닙니다
4. 네번째 일기
각 지자체마다 임시 주거지원 사업이 있다. 긴급한 상황이 생겨 주거 상실 위기에 놓인 가구에 임대주택을 임시로 공급하는 제도이다. 온은 청소년과 함께 A 지역에서 이 지원제도를 신청해 보았다. 주거복지센터에서 1차 상담을 통해 주거 취약에 놓인 사람인지를 확인한다. 이후 지자체 담당 공무원과 미팅을 통해 선정 절차를 거친다. LH와 지자체가 주거 계약을 한 집이기 때문에 사실상 미성년자 주거 계약도 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다. 게다가 아주 적은 비용의 금액 정도만 공과금 용도로 내면 되니 비록 임시거처이기는 하지만 거리, 시설, 고시원이 아닌 집에서 지내며 다음 거처를 준비할 수 있는 셈이다.
이 집에 들어가기까지 다양한 곳들과의 협업과 소통이 필요했다. 주거복지센터, 지자체 담당 부서 공무원, 행정복지센터, 청소년자립지원관 까지. 그 시간을 보내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얻은 것은 눈치껏 상대가 원하는 답을 해주는 협상의 기술이었다. 대게는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거나, 앞으로도 뾰족한 대안이 없음을 증명하며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자립 의지는 그 누구보다 강력하여 잘 살아낼 수 있음을 어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다가 ‘불안정한 위기에 놓인’ 사람이 혼자 살아가는 것에 대한 위험과 불안에 대해 괜찮은 건지 검증하고 싶어 하는 것이 느껴지면 곁에서 사례 지원하는 기관들이 잘 챙겨보겠다고 부지런히 설명한다. (지자체 미팅에서 ‘저희 사업으로 지원받다가 자해/자살 사건이 생기면 아주 곤란해요.’ 라는 염려를 500번은 들은 것 같다…) 그러나 그 설명의 톤을 아주 세밀하게 가져가야 한다. 안그러면 ‘이미 지원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이 집이 꼭 필요한가요?’라는 어퍼컷의 질문으로 되돌려 맞게 된다. 그럼 ‘저희는 공적 지원 시스템이 아니고… 임시로 고시원만 아주 조금 지원할 수 있고…’ 다시 도돌이표가 시작된다. 지난했던 청소년의 삶이 고작 서류 몇 장으로 평가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최종 선정이 되는 분위기가 되었길래 ‘혹시 집에 에어컨이 있을까요? 올해 여름이 너무 덥다고 해서요…’ 라는 질문에 ‘이런 집에 에어컨 같은 걸 바라시면 안 되죠. 요새 에어컨 있어도 전기세 때문에 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요.’라는 대답을 듣고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어 회의실을 나왔다. 에어컨이 파워 냉방으로 켜져 있어 싸늘한 기운이 가득했던 그 회의실을.
입주하기 전, 집을 둘러보고 왔다. 버스에서 내려 언덕을 한참 올라가 마주한 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케케묵은 먼지와 온갖 벌레들의 잔해들이 가득했다. 싱크대 위 선반에는 무려 2년 전의 도시가스 검침일 표가 붙어있었다. 집이 필요한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이 집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공가로 있었던 것일까. 걱정과 염려만 가득한 채 지원하기를 주저하거나 거절당했던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그럼에도 일단 살아보기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몇 달 뒤, 덧붙이는 이야기. 또 다른 청소년과 동일한 지원을 신청했다. 지자체는 서류만 보고 미팅 자체를 거절했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임시주택 거주 연령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성년자가 거주했던 선례도 있었음을 설명하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야 미팅을 할 수 있었다. 답답했던 미팅이 끝나고 최종 미선정 결과 통보를 받았다. 국가에 거절당한 청소년은 다시 또 집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 빈 집은 누굴 위한 집인가요 #무슨 걱정이 오만가지 #이젠 해보자. 살아보자
5. 다섯번째 일기
이사를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사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전에 살던 곳에서 짐을 정리해야 하고, 새로 들어갈 집은 청소하고 짐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서 가족, 친구와 같이 이사하고 나면 고생한 기념으로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시켜 나눠 먹는 것 아닐까. 주거119를 하면서 사업비 예산에 ‘이삿짐 운반 차량’ 비용을 책정해 두었지만, 아직 한 명도 그 돈을 사용한 적이 없다. 청소년이 가지고 오는 짐은 대게 가방 1~2개가 전부이기 때문에 이삿짐 차량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비누 받침대, 화장실 슬리퍼, 라면 끓여 먹을 냄비, 빨래 건조대까지… 다이소에서 한바탕 쇼핑을 하고 새로운 집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는다. 입주하는 집도 구석구석 청소한다. 코인세탁기를 찾아 이불도 빨아본다. 도시가스와 인터넷도 새로 연결한다. 전입신고도 하고 집 근처 마트와 편의점은 어디 있는지도 알아둔다. 이삿짐 차를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사란 혼자 하기에 너무 막막하고 벅찬 일임은 틀림없다.
한 청소년 지원기관에 이사와 주거 유지 지원을 요청했다가 “이사와 청소는 혼자 하는 거죠.”라는 답변을 듣고 난 이후로 청소년 지원기관에 이사를 함께 하자고 요청할 때면 또 거절당할까 봐 가끔 떨린다. (다행히 다른 기관들에서 함께 해주어서 그래도 요새는 북적북적 여럿이 이사를 한다.)'자립은 혼자 힘으로 해내는 것이고 지원 기관은 그 방법을 알려주거나 스스로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조력하는 곳이다. 처음부터 함께 하면 의존도만 높아져서 경계해야 한다.'라며 많은 지원의 경험에서 도출해 낸 결론이라는 실무자의 말에,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곳은 ‘청소하는 방법’이 설명된 영상 링크를 보내거나 필요한 물품을 온라인으로 배송시켜 준다. 우리는 곰팡이 제거제와 바퀴벌레약을 사 들고 집에 가서 청소를 같이하며 ‘이렇게 저렇게 정리하고 청소하자’라는 잔소리를 한참 하고 온다. 얼마 전에는 며칠째 박스를 뜯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던 선풍기를 함께 조립했다. 지원 기관에서 온라인으로 배송시켜 준 자립 물품이었다.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자립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 어딘가에서 보고 끄덕였던 문장이 생각난다. 의존할수록, 더 많이 기대고 의지할수록 삶을 더 잘 살아가고 싶은 몸도 마음도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자꾸 해주면 버릇되고 의지만 해요 #처음부터 척척박사가 어디 있나 #걱정하는 의존의 정도는 뭘까 #자립과 의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