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소개 부탁드려요!
도넛: 안녕하세요. 이제 스무 살이 된 관악구민 도넛입니다.
시연: 저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에서 활동하는 시연이에요. 최근 도넛의 집을 구하는 과정을 함께했는데, 요즘 제 가장 큰 관심사는 “도넛과 우리가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예요.
2. 최근 고시원에서 이사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이사를 하게 되셨나요?
도넛: 시연이 주거안심종합센터라는 곳을 알려줘서 같이 가서 집을 신청했어요. 그날 비가 정말 많이 왔거든요. 신청을 위해 면담을 하고 집을 보러 갔는데, 딱 한 집만 보여줬어요. 선택권은 없었죠. 첫인상은 곰팡이 냄새였고, 거미도 많았어요.
시연: 그러고 보니 고시원 들어갈 때도 비가 많이 왔었죠(웃음). 왜 이렇게 집 구할 때마다 비가 오는지. 앞으로 잘 살려나보다 이런 정신승리를 같이 하기도 했었죠. 고시원은 몇 군데 둘러보며 고를 수 있었는데, 이번엔 한 군데뿐이라 아쉽긴 했어요. 그 집이 2년 동안 비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도넛: 그래도 고시원보다는 나을 것 같았어요. 고시원은 딱 누울 공간만 있어요. 저에게 고시원은 잠만 자는 정도의 공간이었어요. 옷을 빨아도 널 곳이 없고, 빨래는 방에 쌓여만 갔죠. 부엌도 공용이라 기다려야 하고, 세탁기도 공용인데 자동이 아니라 헹굼, 탈수를 따로 눌러야 했어요. 방이랑 세탁기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빨래할 때마다 오가야 했고요. 공용 건조대는 계단에 있는데 햇빛이 거의 안 들어서 잘 안 말랐어요. 속옷은 방에 널기도 했는데 창문이 진짜 조그만해요. 햇빛이 안 들어오니 잘 안 마르죠. 환기도 안 되고요. 고시원에 있으니 더 무기력해졌어요. 집에 있기 싫고 그런 상태였어요. 그래서 빨리 이사를 하고 싶었어요.
3. ‘첫 이사’였는데 어떠셨어요?
시연: 그날의 장면이 아직도 파노라마처럼 떠올라요.
도넛: 전날에 쓰레기를 세 봉지나 버렸는데도 계속 나왔어요. 제가 청소를 잘 못하기도 하고, 고시원에 살 때 많이 무기력한 상태였거든요. 한 두번 쓰레기를 방치하다 보니 쌓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치울 엄두가 안 나는거예요. 이사 하는 날 무영(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 활동가),시연, 콜리(온 활동가) 세 분이 도와줬어요. 혼자였다면 절대 못했을 거예요.
시연: 그러니까. 머문 자리도 깨끗하게 치우고 나와야 하니까 고시원을 1차로 치우고 이사 갈 집에 딱 들어갔는데 거기도 치울 게 한 트럭이었어요. 그래도 저는 그날 같이 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네 명이 방, 부엌, 화장실 나눠서 역할 분담을 딱딱 했잖아요. 혼자였으면 저도 포기했을 것 같아요. 엄두가 안 나잖아요.
도넛: 혼자면 그날 이사 못 했을걸요(웃음). 이제 너무 힘들어서 안하고 싶어요. 음…아닌가? 다음에도 같이 이사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해 볼 수 있으려나.
4. 이사 후 좋았던 점과 아쉬운점이 있을까요?
도넛: 고시원 화장실에는 수납장이 없었어요. 수건 놓을 곳이 없으니까 여기저기 놔두게 되고, 맨날 어디 있는지 못 찾았어요. 그리고 고시원 화장실은 엄청 좁잖아요. 한번은 샤워할 때 화장실에 핸드폰을 들고 들어 갔다가 핸드폰이 물에 홀딱 젖어서 고장났었던 적도 있어요.
시연: 이사하는 날 고시원을 정리하면서 동전이나 교통카드 같이 잃어버린 물건들이 여기저기서 유물로 발견되었던게 생각나네요.
도넛: 그런데 지금 집에서는 그런게 덜해요(웃음). 아, 그리고 고시원에는 친구를 못 부르잖아요. 혼자만 들어가도 꽉 차고. 이사하고 나서는 친구들도 집에 부르고 재미었어요. 집들이 선물도 받고.
시연: 맞아요. 고시원에 들어갔을 때는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던거 같은데, 이번에 이사했을 때는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카카오톡으로 이사했다고 받았던 선물도 자랑했던거 같아요.
도넛: 저에게는 이 집이 첫 집이라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거. 쉼터는 사실 좀 아니잖아요. 여러 명이 같이 단체 생활하고, 방도 같이 써야 되고 그런 게 있는데 내 집에서는 나만 있으니까 훨씬 심적으로 더 편해요. 이사해서 아쉬운 점도 있긴 해요. 일하는 곳이 멀어졌어요. 집에 가려면 언덕을 올라야 하거든요. 아직도 적응이 안되서 힘들어요. 그래서 한번 집에서 나오면 모든 일을 다하고 들어가요. 그거 말고는 아쉬운 점이 없어요.
5. 집이 생기면서 새로운 고민도 생겼다고 하셨는데요?
도넛: 집이 커져서 치우는게 어려워졌어요. 뭘 흘렸으면 바로 주어야 되잖아요. 그게 잘 안 돼요. 나중에 주워야지 이러고, 또 까먹고. 그러면 나중에 치울 때 더 힘들어지고. 잘 안 고쳐져요. 가스레인지에도 뭘 흘렸으면 바로 닦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먹고 나서 닦아야지 하고 까먹고 자는 거예요. 그래도 요즘에는 바로바로 치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최근에 바퀴벌레를 두 번 마주쳤어요. 그래서 음식물 같은 건 바로 치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시연: 도넛이 청소를 하게 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벌레인가 보다(웃음). 떨어진 쓰레기는 좀 덜 불편하지만, 벌레는 불편한거지. 내가 불편한 게 뭔지 아는 것도 중요하겠다 싶어요. 그리고 누군가는 치우는 게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고, 도넛이 계속 설명해 주었듯 무기력함 때문에, 혼자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 때 청소가 어려워지잖아요. 그럴 때 누가 같이 옆에서 “하자, 하자. 잘해보자.”하면 저는 좀 하기 싫어도 하게 되는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와 같이 한달에 한두 번 도넛 집에 방문해 도넛과 같이 청소하기로 했어요. 아침마다 출근하자고 모닝콜도 하고, 저축하자고 잔소리도 하고요. 같이 잘 해보고 싶어서 약속을 했는데 도넛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도넛: 네, 혼자보다 같이 하는게 훨씬 도움이 돼요. 최근에 환기를 잘 못해서 집에 곰팡이가 폈잖아요. 곰팡이 치우는 것도 혼자 했으면 못했을 것 같아요. ‘곰팡이가 있네’ 이러고 그냥 말았을 것 같아. 곰팡이 제거제만 보내줬다면 아마 못 했을 걸요. 직접 같이 해주니까 가능했어요.
아, 그리고 일을 시작했어요. 월급도 두 번 받았고요. 일 안 할 때는 ‘아! 일하고 싶다’ 이랬는데 일을 하니까 ‘일하기 싫다’ 이러고 있어요. 그래도 막막함은 덜 해요. 트랜스젠더는 일할 수 있는 선택지가 좁은데, 지금 다니는 자활센터는 성별로 차별하지 않고, 못 나오면 기다려주기도 해서 좋아요.
저는 “다 해주면 청소년이 자립 못한다”는 말에 꼭 동의하지 않아요.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사람은 혼자 있으면 더 안 하게 되고 그런 게 있잖아요. 완전 다 해주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같이 해주고, 청소년에게도 책임을 어느정도 나눠주면 하려고 하는게 있으니까요.
6. 도넛님이 살고 계신 집은 ‘디딤돌 주택’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집인지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시연: 지자체마다 긴급 주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임시 주택을 제공하는 제도가 있어요. 관악구에서는 그걸 ‘디딤돌 주택’이라고 불러요. 도넛이 쉼터에 오래 있을 수 없어서 고시원에 갔지만, 고시원은 집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주거안심종합센터에 함께 가서 신청했어요.
신청은 센터에서 하지만 최종 결정은 구청에서 해요. 구청 면담에서는 “이 집이 왜 필요한지, 이후 계획은 있는지,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지”를 계속 물으시더라고요. 임시주거라고 강조하면서요. 구청에서는 종이에 써진 도넛의 상황만 보고 결정을 내리게 되잖아요. 그러다보니 ‘걱정’만 많아지는거 같았어요. 사실 누구나 처음 집을 구하면 어려움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럴 때 곁에서 챙겨줄 사람이 필요한 거죠. 저는 임시 주거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임시 주거를 안내하고, 살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국가는 약간 뒤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쉽기도 했어요.
저는 디딤돌 주택이 꼭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집을 잃거나 당장 돈이 없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그런 이들이 고시원 같은 비적정 주거에 가는 게 아니라 ‘집다운 집’살 수 있도록 해주니까요. 이런 좋은 제도가 좀 더 실효성이 있으려면 자격조건을 지금 보다는 완화해야할거 같아요. 도넛이 들어간 집이 왜 2년동안 비어져 있었는지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문제’가 일어날까봐 걱정하다가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사회가 말하는 정상성을 충족하는 사람만이 긴급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 이상하죠. 누구나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잘 기억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원의 순서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먼저 함께 살 집을 만들고 청소든 곰팡이든 바퀴벌레든 같이 해결하면 되잖아요. 그러면서 그러면 우리가 다같이 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도넛: 맞아요!
기록 : 쏭쏭
도넛의 고시원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 [청소년주거119 현장르포] 도넛의 고시원 탐방기
* <청소년주거119 사업>은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의 지원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1. 소개 부탁드려요!
도넛: 안녕하세요. 이제 스무 살이 된 관악구민 도넛입니다.
시연: 저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에서 활동하는 시연이에요. 최근 도넛의 집을 구하는 과정을 함께했는데, 요즘 제 가장 큰 관심사는 “도넛과 우리가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예요.
2. 최근 고시원에서 이사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이사를 하게 되셨나요?
도넛: 시연이 주거안심종합센터라는 곳을 알려줘서 같이 가서 집을 신청했어요. 그날 비가 정말 많이 왔거든요. 신청을 위해 면담을 하고 집을 보러 갔는데, 딱 한 집만 보여줬어요. 선택권은 없었죠. 첫인상은 곰팡이 냄새였고, 거미도 많았어요.
시연: 그러고 보니 고시원 들어갈 때도 비가 많이 왔었죠(웃음). 왜 이렇게 집 구할 때마다 비가 오는지. 앞으로 잘 살려나보다 이런 정신승리를 같이 하기도 했었죠. 고시원은 몇 군데 둘러보며 고를 수 있었는데, 이번엔 한 군데뿐이라 아쉽긴 했어요. 그 집이 2년 동안 비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도넛: 그래도 고시원보다는 나을 것 같았어요. 고시원은 딱 누울 공간만 있어요. 저에게 고시원은 잠만 자는 정도의 공간이었어요. 옷을 빨아도 널 곳이 없고, 빨래는 방에 쌓여만 갔죠. 부엌도 공용이라 기다려야 하고, 세탁기도 공용인데 자동이 아니라 헹굼, 탈수를 따로 눌러야 했어요. 방이랑 세탁기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빨래할 때마다 오가야 했고요. 공용 건조대는 계단에 있는데 햇빛이 거의 안 들어서 잘 안 말랐어요. 속옷은 방에 널기도 했는데 창문이 진짜 조그만해요. 햇빛이 안 들어오니 잘 안 마르죠. 환기도 안 되고요. 고시원에 있으니 더 무기력해졌어요. 집에 있기 싫고 그런 상태였어요. 그래서 빨리 이사를 하고 싶었어요.
3. ‘첫 이사’였는데 어떠셨어요?
시연: 그날의 장면이 아직도 파노라마처럼 떠올라요.
도넛: 전날에 쓰레기를 세 봉지나 버렸는데도 계속 나왔어요. 제가 청소를 잘 못하기도 하고, 고시원에 살 때 많이 무기력한 상태였거든요. 한 두번 쓰레기를 방치하다 보니 쌓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치울 엄두가 안 나는거예요. 이사 하는 날 무영(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 활동가),시연, 콜리(온 활동가) 세 분이 도와줬어요. 혼자였다면 절대 못했을 거예요.
시연: 그러니까. 머문 자리도 깨끗하게 치우고 나와야 하니까 고시원을 1차로 치우고 이사 갈 집에 딱 들어갔는데 거기도 치울 게 한 트럭이었어요. 그래도 저는 그날 같이 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네 명이 방, 부엌, 화장실 나눠서 역할 분담을 딱딱 했잖아요. 혼자였으면 저도 포기했을 것 같아요. 엄두가 안 나잖아요.
도넛: 혼자면 그날 이사 못 했을걸요(웃음). 이제 너무 힘들어서 안하고 싶어요. 음…아닌가? 다음에도 같이 이사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해 볼 수 있으려나.
4. 이사 후 좋았던 점과 아쉬운점이 있을까요?
도넛: 고시원 화장실에는 수납장이 없었어요. 수건 놓을 곳이 없으니까 여기저기 놔두게 되고, 맨날 어디 있는지 못 찾았어요. 그리고 고시원 화장실은 엄청 좁잖아요. 한번은 샤워할 때 화장실에 핸드폰을 들고 들어 갔다가 핸드폰이 물에 홀딱 젖어서 고장났었던 적도 있어요.
시연: 이사하는 날 고시원을 정리하면서 동전이나 교통카드 같이 잃어버린 물건들이 여기저기서 유물로 발견되었던게 생각나네요.
도넛: 그런데 지금 집에서는 그런게 덜해요(웃음). 아, 그리고 고시원에는 친구를 못 부르잖아요. 혼자만 들어가도 꽉 차고. 이사하고 나서는 친구들도 집에 부르고 재미었어요. 집들이 선물도 받고.
시연: 맞아요. 고시원에 들어갔을 때는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던거 같은데, 이번에 이사했을 때는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카카오톡으로 이사했다고 받았던 선물도 자랑했던거 같아요.
도넛: 저에게는 이 집이 첫 집이라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거. 쉼터는 사실 좀 아니잖아요. 여러 명이 같이 단체 생활하고, 방도 같이 써야 되고 그런 게 있는데 내 집에서는 나만 있으니까 훨씬 심적으로 더 편해요. 이사해서 아쉬운 점도 있긴 해요. 일하는 곳이 멀어졌어요. 집에 가려면 언덕을 올라야 하거든요. 아직도 적응이 안되서 힘들어요. 그래서 한번 집에서 나오면 모든 일을 다하고 들어가요. 그거 말고는 아쉬운 점이 없어요.
5. 집이 생기면서 새로운 고민도 생겼다고 하셨는데요?
도넛: 집이 커져서 치우는게 어려워졌어요. 뭘 흘렸으면 바로 주어야 되잖아요. 그게 잘 안 돼요. 나중에 주워야지 이러고, 또 까먹고. 그러면 나중에 치울 때 더 힘들어지고. 잘 안 고쳐져요. 가스레인지에도 뭘 흘렸으면 바로 닦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먹고 나서 닦아야지 하고 까먹고 자는 거예요. 그래도 요즘에는 바로바로 치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최근에 바퀴벌레를 두 번 마주쳤어요. 그래서 음식물 같은 건 바로 치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시연: 도넛이 청소를 하게 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벌레인가 보다(웃음). 떨어진 쓰레기는 좀 덜 불편하지만, 벌레는 불편한거지. 내가 불편한 게 뭔지 아는 것도 중요하겠다 싶어요. 그리고 누군가는 치우는 게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고, 도넛이 계속 설명해 주었듯 무기력함 때문에, 혼자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 때 청소가 어려워지잖아요. 그럴 때 누가 같이 옆에서 “하자, 하자. 잘해보자.”하면 저는 좀 하기 싫어도 하게 되는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와 같이 한달에 한두 번 도넛 집에 방문해 도넛과 같이 청소하기로 했어요. 아침마다 출근하자고 모닝콜도 하고, 저축하자고 잔소리도 하고요. 같이 잘 해보고 싶어서 약속을 했는데 도넛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도넛: 네, 혼자보다 같이 하는게 훨씬 도움이 돼요. 최근에 환기를 잘 못해서 집에 곰팡이가 폈잖아요. 곰팡이 치우는 것도 혼자 했으면 못했을 것 같아요. ‘곰팡이가 있네’ 이러고 그냥 말았을 것 같아. 곰팡이 제거제만 보내줬다면 아마 못 했을 걸요. 직접 같이 해주니까 가능했어요.
아, 그리고 일을 시작했어요. 월급도 두 번 받았고요. 일 안 할 때는 ‘아! 일하고 싶다’ 이랬는데 일을 하니까 ‘일하기 싫다’ 이러고 있어요. 그래도 막막함은 덜 해요. 트랜스젠더는 일할 수 있는 선택지가 좁은데, 지금 다니는 자활센터는 성별로 차별하지 않고, 못 나오면 기다려주기도 해서 좋아요.
저는 “다 해주면 청소년이 자립 못한다”는 말에 꼭 동의하지 않아요.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사람은 혼자 있으면 더 안 하게 되고 그런 게 있잖아요. 완전 다 해주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같이 해주고, 청소년에게도 책임을 어느정도 나눠주면 하려고 하는게 있으니까요.
6. 도넛님이 살고 계신 집은 ‘디딤돌 주택’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집인지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시연: 지자체마다 긴급 주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임시 주택을 제공하는 제도가 있어요. 관악구에서는 그걸 ‘디딤돌 주택’이라고 불러요. 도넛이 쉼터에 오래 있을 수 없어서 고시원에 갔지만, 고시원은 집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주거안심종합센터에 함께 가서 신청했어요.
신청은 센터에서 하지만 최종 결정은 구청에서 해요. 구청 면담에서는 “이 집이 왜 필요한지, 이후 계획은 있는지,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지”를 계속 물으시더라고요. 임시주거라고 강조하면서요. 구청에서는 종이에 써진 도넛의 상황만 보고 결정을 내리게 되잖아요. 그러다보니 ‘걱정’만 많아지는거 같았어요. 사실 누구나 처음 집을 구하면 어려움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럴 때 곁에서 챙겨줄 사람이 필요한 거죠. 저는 임시 주거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임시 주거를 안내하고, 살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국가는 약간 뒤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쉽기도 했어요.
저는 디딤돌 주택이 꼭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집을 잃거나 당장 돈이 없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그런 이들이 고시원 같은 비적정 주거에 가는 게 아니라 ‘집다운 집’살 수 있도록 해주니까요. 이런 좋은 제도가 좀 더 실효성이 있으려면 자격조건을 지금 보다는 완화해야할거 같아요. 도넛이 들어간 집이 왜 2년동안 비어져 있었는지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문제’가 일어날까봐 걱정하다가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사회가 말하는 정상성을 충족하는 사람만이 긴급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 이상하죠. 누구나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잘 기억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원의 순서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먼저 함께 살 집을 만들고 청소든 곰팡이든 바퀴벌레든 같이 해결하면 되잖아요. 그러면서 그러면 우리가 다같이 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도넛: 맞아요!
기록 : 쏭쏭
도넛의 고시원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 [청소년주거119 현장르포] 도넛의 고시원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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