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과 활동가가 함께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또 거절당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로 보낸 일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켠에는 안심도 있었어요. 그 덕에 멈추지 않고 청소년주거119의 내년을 계획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이번 청소년 주거지 탐방 현장르포에서는 청소년의 주거권이 보장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그려지지 않는다며 꼼짝도 안 하는 세상에서 뭐든 해 보자며 함께한 분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이 분들을 통해 청소년이 함께 사는 지역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힌트를 얻게 되기도 했어요. 그러는 중에 청소년을 함께 지원하는 짝꿍 조직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요. 함께여서 가능했던 청소년주거119, 협력한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내년에는 어떤 새로운 분들과 만나게 될 지 궁금해지면서... 여러분 모두를 청소년주거119에 초대합니다. |
청소년에게 주거지원이 된다고 하면 걱정부터 쏟아진다. 청소년의 상황이 안정적이지 않아서, 보호가 필요하니까, 미성년자는 주거 계약이 어려울 것 같아서…등의 걱정과 불안으로 미성년자에게 주거지원은 아직 안 된다고 결론부터 짓는다. 그러니 청소년의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려고 해도 청소년에게 주거지원이 과연 어떻게 될지 제대로 살펴본 이가 없다는 현실에서 다시 멈춰 서게 된다. 이렇게 여러 염려와 고민만으로 주저하고 있는 동안 청소년들은 거리에서 각자 고군분투하며 점점 더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두의 염려처럼 청소년주거지원사업은 온이 하기엔 어림도 없는 사업이었다. 활동가를 늘리지 않은 상태로 기존 활동을 그대로 하면서 청소년의 주거지원을 더 해 보겠다는 결심부터 무리였으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청소년을 함께 지원하는 ‘짝꿍 기관’들을 조직해 보려고 했다. 많은 기관이 함께 지원하는 것에 대해 “그건 좀 자신이 없는데…”라는 반응부터 보였다. 정말로 시도조차 무리가 되는 사업이었던 것인가.
그러나! 일 년이 지나고 난 지금, 많은 짝꿍 조직이 생겼다. 청소년주거119(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이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주거지원사업)를 하며 청소년의 곁이 되는 사회를 만나게 되었다. 이미 곳곳에 청소년과 함께 살고자 하는 기관들과 사람들이 있었다. 소중한 발견이 이 사업 중에 있었다. 든든하고 고마운 사람들!
일단 시작은 해 보자 했는데…
청소년주거119에서 지원할 수 있는 돈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30만원. 이렇게 적은 돈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열악한 주거지 중에서 그래도 좀 더 나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요즘 같은 전세사기가 일상인 세상에서 이 적은 보증금도 잘 지키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적은 자원으로 시작하지만, 청소년이 살아갈 집을 꼼꼼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그러니 시작부터 괜히 자신이 없어진다. 그때 나타난 청년주거지원활동가 A님! 그동안 수많은 청년과 살만한 집을 함께 찾아오고 그 안에서 발견한 것들을 주거권 운동으로 만들어온 청년 주거권 운동의 노하우가 우리를 안심시켰다. 부동산을 예약해서 A활동가와 함께 청소년이 살만한 집을 보러 다녔다.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어떤 것까진 욕심부릴 수 없는지를 이야기 나누며 청소년이 살 집의 컨디션들을 미리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건축물대장이나 등기부등본까지 함께 보게 되니 전문가까지는 안돼도 이 정도면 청소년들과 부동산에 가 볼 수 있는 자신감까진 생겼다.(살면서 내 집 구하려고 부동산을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 이건 또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
아참! 어떤 부동산부터 시작할지 몰라 주저하는 우리에게 검증된 부동산 리스트를 건네준 B주거복지센터와 괜찮은 고시원 리스트를 준 C청소년자립지원관도 든든했다. 사업을 하면서 뜻하지 않게 좋은 공인중개사분들과 고시원 사장님들을 더 알게 되었지만, 맨땅에 헤딩해야 할 때 이런 리스트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세상의 온갖 사기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부적을 건네준 분들.
주거계약… 높은 산을 넘어가는데, 든든한 뒷배들이 등장한다.
미성년자여서 어렵다고 하는 중에도 청소년 개인들의 사정을 듣고 더 힘내어 집을 찾아주는 공인중개사들이 등장했다. 우리를 대신해 임대인을 안심시키며 설득도 하고, 말로 보증까지 해 주는 공인중개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입주 지원 확인서’ 라는 문서를 만들어 보완해 보자는 방법을 함께 찾아주기도 했다. 고생과 어려움은 기본값이니 이런 소소한 친절과 배려에 감동하고 안심이 됐다.(고생과 어려움이 기본값인 청소년의 일상이 슬프고 화나는 건 어쩌냐며..) 심지어 한 공인중개사는 청소년의 상황을 들은 후에 청소년을 지원하는 단체에 후원을 시작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동안은 몰랐던 우리 사회의 다른 존재들의 삶을 알게 되니 같이 살아갈 마음을 먹기도 하는 분들이 생기기도 했다.
여기저기에서 청소년과의 주거 계약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도 쪼그라들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을 구석이 있어서였다. 온에는 든든한 법률활동가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변호사들과 미성년자와의 주거 계약이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얘기를 계속 해 왔었으니 그 말에 자신이 있었다. 또한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모든 문제를 같이 해결해 줄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참 든든했다. 결국 일 년 동안 법적 문제가 되는 일이 없었으니 청소년과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던 건 맞지만, 집과 관련하여 문제도 생겼다면 싸워볼 만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만큼 각오하고 시작했다는 것이기도 했겠지.
청소년이 집 없이 살아가는 일상에는 법적으로 문제될 많은 위험이 있다. 지금도 집 문제 외에 법적인 일들이 진행 중이기도 하니… 주거라는 것이 단순하게 집 문제만이 아닌 삶 전반에 걸쳐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한편 기초생활보장제도 가구분리, 위기청소년특별지원사업 등 기본 소득이 있어야 하니 필요한 제도를 찾아나섰다. 탈가정 하여 전입 신고하거나 수급권을 신청하겠다고 하면, 시설을 연계해라, 행정적으로 법적으로 안된다는 얘기부터 하는 곳 중 하나가 행정복지센터이다. 그런 중 만난 반짝이던 분들이 생각난다. 가족과 따로 살 수 밖에 없는 청소년의 상황을 귀기울여 듣고 상황에 맞춰 염려될 만한 것과 필요한 절차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며 수급 신청을 진행해 주던 공무원, 위기 상황에 놓인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정복지센터 담당자와 소통하며 위기청소년특별지원이 가능하게 해 준 구청 공무원, 미성년자의 전입신고가 문제가 될 게 없다며 처리하는 무심한 태도까지… 너무 거절을 많이 당해서인지 일단 의심부터 한 후, 한참 뒤 감동이 밀려온다. 당연한 건데 뭐 이리 감동까지 하냐 싶지만, 당분간은 모든 순간 이런 감동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주거권은 물리적인 공간, 집에 대한 권리만 얘기하는 건 아니잖아요.
청소년 주거권을 이야기할 때, ‘청소년에게 집을 제공하는 게 좀 위험하진 않나요?’라는 염려는 계속되고 있다. 당연한 말이다. 안전하게 휴식하며 내가 나로서 편할 수 있는 집이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집을 유지하고 일상을 안정시킬 다양한 지원이 연결될 수 있도록 청소년자립지원관으로의 연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청소년이 자립지원관에 잘 연결되기 위해서는 그동안 청소년의 곁에서 주거 위기 상황을 확인하면서 대책 마련을 위해 고민했던 청소년쉼터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했다.(대부분 청소년자립지원관은 기관의 추천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런 과정에서 청소년쉼터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반가웠다. 이 분들 또한 그동안은 청소년 곁에서 대안 없이 걱정만 했다면, 이제 집을 구할 수 있게 되니 자립지원 연결이 가능해졌다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서를 써 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청소년 곁에서 협력할 수 있는 분들은 만나는 것은 늘 반갑고 감사하다.
여러 어려운 삶을 통과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청소년주거119의 지원을 통해서 시설과 지인의 집을 드나드는 불안정한 일상을 멈출 수는 있었지만, 집 외에도 필요한 지원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으니 정서적 취약함은 다시 이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어진 한 청소년이 다시 시설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쉽지 않았다. 청소년도 활동가들도 시설이 힘들어하며 보냈던 그 시간이 기억나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다른 대안을 찾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들어간 시설에서 오랜만에 밀도 깊은 관심과 따뜻한 밥에 마음이 편해졌기도 하고 위로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과 부딪히며 지내야 하는 날들은 결국 시설은 편한 내 집이 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어져 다시 나오겠다는 무거운 결심을 하게 된다.
잠시였지만 시설에 있는 동안 아침저녁으로 요동치는 이 청소년의 마음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그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함께 찾고, 끈질기게 그 곁을 함께 지키는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이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함께 발견하며 청소년의 판단을 응원하고 결정을 격려하는 활동가들이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함께 해결해 나갔고, 마음과 몸의 건강을 보살피는 순간이 이 청소년에게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활동가 역시 시설의 여러 한계를 분명히 알기에 오늘은 시설에서 살지만 내일 살 집을 같이 계획하자고 용기를 건네기도 했다. 그렇다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도 이런 활동가들이 곳곳에 존재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지원이 시설을 중심으로 설계된 이 현실에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지원 체계들이 재설계되기를 바란다. 자유와 보호가 다 보장되는 사회가 되기를, 현물이나 현금 지원을 넘어 곁이 되는 사람으로 가득 채워진 지역사회를 다시 꿈꾸게 된다.
하반기가 되니 지원금이 아슬아슬해졌다. 예상보다 많은 청소년을 만나게 되니 지원금이 점점 빡빡해진다. 우리보다 한해 먼저 청소년주거지원을 시작한 H이동쉼터와 지원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했다. 그곳도 주거가 필요한 이들이 있다면 아무런 조건도 묻지 않고 지원한다고 한다. 청소년의 상황에 맞게 필요한 지원을 연결하겠다는 마음뿐인 듯 보인다. 이곳의 주거지원은 청소년의 상황과 현실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지원이었다. 또한 우리가 늘 없는 지원금으로 허덕대는 걸 아니까 홈리스청소년을 위해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지원을 보태주는 E센터도 등장했다. 청소년의 일상을 챙기는 이들과 주거를 중심으로 삶에 대한 지원을 상의하다 보니 행정복지센터 동행하는 일, 다른 지원 단체를 연결하는 일, 이사를 지원하는 일 등 상황에 따라서 일을 나누기도 하고, 일상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짝꿍 조직을 만났다!! 같이 의논하니까 더 많은 지원이 가능해졌다. 이 든든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자립 준비가 된 이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자립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다음을 계획하며 지금 실행할 수 있는 것을 함께 하면서 말이다. 서른이 넘어 처음 자립하며 모든 것에 낯설어 여기저기 물으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던 나의 그 날들이 문득 생각났다. 청소년 곁에 있는 활동가들을 보며 참으로 안심이 됐다.
함께여서 가능했다.
청소년이 혼자 사니까… 혹시 뭐가 더 불편할까 봐 챙겨주는 윗집 어르신이 있었다. 밖에서 집 안이 보인다며 어느 날 가림막까지 직접 사 와서 설치해 주고, 주민센터에서 나눠줬다며 종량제봉투를 한 아름 안고 온 분이었다. ‘청소년이니 밤에 깨어 있고 그러면 시끄러워질 수 있지, 하지만 서로 불편하지 않게 좀 더 잘 지내보자’라고 얘기해 주는 옆집 사람도 있었다. 빈곤한 삶이 너무 고단하여 자녀 돌보기를 포기했던 부모가 청소년주거119에서 지원받게 된다고 했더니 이제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자녀의 삶을 같이 돌볼 용기를 갖게 되기도 했다. 가족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게 해서 아예 포기하게 만들었던 사회에서 가족 돌봄을 가능하게 한 사업이기도 했다.
수월하게 진행되면 의심이 들 정도로 안 된다는 얘기들이 더 많았던 날들이었다. 그런데도 어두운 밤 반딧불이처럼 반짝 만나는 사람들과 기관들이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니, 엄두도 못 내는 일이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힘을 보태어 일 년을 보낼 수 있었다. 혼자 다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아예 시작도 못 하게 된다.
“청소년의 집다운 집, 너무 고민하지 말고, 이젠 좀 그냥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라는 말을 던져줬던 제로님의 말(2022, 지원주택 컨퍼런스)처럼, 걱정하느라 보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이 사회에서 희생되어 살고 있는가. 우리가 모두 조금씩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청소년도 지역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상상을 시작할 수 있다.
누구보다 이 사업이 가능하게 했던 청소년들이 있다. 자신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협상도 협력도 하면서 이 시간을 같이 보낸 청소년들 덕분에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었다. 이 사업이 잘 되어서 세상이 청소년 주거권 보장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좀 더 애써보기도 한다는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부담스럽다며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들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보낸 우리가 함께 만들어 온 이날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청소년 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함께 애쓰며 서로 돌보는 지역사회는 필요하다. 그런 사회는 어디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만들고 있다. 함께 애쓴 모든 분께 감사하고 싶은 연말이다.
글_미혜
* <청소년주거119 사업>은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의 지원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청소년 주거지 탐방 현장르포에서는 청소년의 주거권이 보장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그려지지 않는다며 꼼짝도 안 하는 세상에서 뭐든 해 보자며 함께한 분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이 분들을 통해 청소년이 함께 사는 지역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힌트를 얻게 되기도 했어요. 그러는 중에 청소년을 함께 지원하는 짝꿍 조직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요. 함께여서 가능했던 청소년주거119, 협력한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내년에는 어떤 새로운 분들과 만나게 될 지 궁금해지면서... 여러분 모두를 청소년주거119에 초대합니다.
청소년에게 주거지원이 된다고 하면 걱정부터 쏟아진다. 청소년의 상황이 안정적이지 않아서, 보호가 필요하니까, 미성년자는 주거 계약이 어려울 것 같아서…등의 걱정과 불안으로 미성년자에게 주거지원은 아직 안 된다고 결론부터 짓는다. 그러니 청소년의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려고 해도 청소년에게 주거지원이 과연 어떻게 될지 제대로 살펴본 이가 없다는 현실에서 다시 멈춰 서게 된다. 이렇게 여러 염려와 고민만으로 주저하고 있는 동안 청소년들은 거리에서 각자 고군분투하며 점점 더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두의 염려처럼 청소년주거지원사업은 온이 하기엔 어림도 없는 사업이었다. 활동가를 늘리지 않은 상태로 기존 활동을 그대로 하면서 청소년의 주거지원을 더 해 보겠다는 결심부터 무리였으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청소년을 함께 지원하는 ‘짝꿍 기관’들을 조직해 보려고 했다. 많은 기관이 함께 지원하는 것에 대해 “그건 좀 자신이 없는데…”라는 반응부터 보였다. 정말로 시도조차 무리가 되는 사업이었던 것인가.
그러나! 일 년이 지나고 난 지금, 많은 짝꿍 조직이 생겼다. 청소년주거119(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이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주거지원사업)를 하며 청소년의 곁이 되는 사회를 만나게 되었다. 이미 곳곳에 청소년과 함께 살고자 하는 기관들과 사람들이 있었다. 소중한 발견이 이 사업 중에 있었다. 든든하고 고마운 사람들!
일단 시작은 해 보자 했는데…
청소년주거119에서 지원할 수 있는 돈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30만원. 이렇게 적은 돈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열악한 주거지 중에서 그래도 좀 더 나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요즘 같은 전세사기가 일상인 세상에서 이 적은 보증금도 잘 지키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적은 자원으로 시작하지만, 청소년이 살아갈 집을 꼼꼼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그러니 시작부터 괜히 자신이 없어진다. 그때 나타난 청년주거지원활동가 A님! 그동안 수많은 청년과 살만한 집을 함께 찾아오고 그 안에서 발견한 것들을 주거권 운동으로 만들어온 청년 주거권 운동의 노하우가 우리를 안심시켰다. 부동산을 예약해서 A활동가와 함께 청소년이 살만한 집을 보러 다녔다.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어떤 것까진 욕심부릴 수 없는지를 이야기 나누며 청소년이 살 집의 컨디션들을 미리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건축물대장이나 등기부등본까지 함께 보게 되니 전문가까지는 안돼도 이 정도면 청소년들과 부동산에 가 볼 수 있는 자신감까진 생겼다.(살면서 내 집 구하려고 부동산을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 이건 또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
아참! 어떤 부동산부터 시작할지 몰라 주저하는 우리에게 검증된 부동산 리스트를 건네준 B주거복지센터와 괜찮은 고시원 리스트를 준 C청소년자립지원관도 든든했다. 사업을 하면서 뜻하지 않게 좋은 공인중개사분들과 고시원 사장님들을 더 알게 되었지만, 맨땅에 헤딩해야 할 때 이런 리스트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세상의 온갖 사기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부적을 건네준 분들.
주거계약… 높은 산을 넘어가는데, 든든한 뒷배들이 등장한다.
미성년자여서 어렵다고 하는 중에도 청소년 개인들의 사정을 듣고 더 힘내어 집을 찾아주는 공인중개사들이 등장했다. 우리를 대신해 임대인을 안심시키며 설득도 하고, 말로 보증까지 해 주는 공인중개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입주 지원 확인서’ 라는 문서를 만들어 보완해 보자는 방법을 함께 찾아주기도 했다. 고생과 어려움은 기본값이니 이런 소소한 친절과 배려에 감동하고 안심이 됐다.(고생과 어려움이 기본값인 청소년의 일상이 슬프고 화나는 건 어쩌냐며..) 심지어 한 공인중개사는 청소년의 상황을 들은 후에 청소년을 지원하는 단체에 후원을 시작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동안은 몰랐던 우리 사회의 다른 존재들의 삶을 알게 되니 같이 살아갈 마음을 먹기도 하는 분들이 생기기도 했다.
여기저기에서 청소년과의 주거 계약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도 쪼그라들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을 구석이 있어서였다. 온에는 든든한 법률활동가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변호사들과 미성년자와의 주거 계약이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얘기를 계속 해 왔었으니 그 말에 자신이 있었다. 또한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모든 문제를 같이 해결해 줄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참 든든했다. 결국 일 년 동안 법적 문제가 되는 일이 없었으니 청소년과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던 건 맞지만, 집과 관련하여 문제도 생겼다면 싸워볼 만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만큼 각오하고 시작했다는 것이기도 했겠지.
청소년이 집 없이 살아가는 일상에는 법적으로 문제될 많은 위험이 있다. 지금도 집 문제 외에 법적인 일들이 진행 중이기도 하니… 주거라는 것이 단순하게 집 문제만이 아닌 삶 전반에 걸쳐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한편 기초생활보장제도 가구분리, 위기청소년특별지원사업 등 기본 소득이 있어야 하니 필요한 제도를 찾아나섰다. 탈가정 하여 전입 신고하거나 수급권을 신청하겠다고 하면, 시설을 연계해라, 행정적으로 법적으로 안된다는 얘기부터 하는 곳 중 하나가 행정복지센터이다. 그런 중 만난 반짝이던 분들이 생각난다. 가족과 따로 살 수 밖에 없는 청소년의 상황을 귀기울여 듣고 상황에 맞춰 염려될 만한 것과 필요한 절차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며 수급 신청을 진행해 주던 공무원, 위기 상황에 놓인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정복지센터 담당자와 소통하며 위기청소년특별지원이 가능하게 해 준 구청 공무원, 미성년자의 전입신고가 문제가 될 게 없다며 처리하는 무심한 태도까지… 너무 거절을 많이 당해서인지 일단 의심부터 한 후, 한참 뒤 감동이 밀려온다. 당연한 건데 뭐 이리 감동까지 하냐 싶지만, 당분간은 모든 순간 이런 감동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주거권은 물리적인 공간, 집에 대한 권리만 얘기하는 건 아니잖아요.
청소년 주거권을 이야기할 때, ‘청소년에게 집을 제공하는 게 좀 위험하진 않나요?’라는 염려는 계속되고 있다. 당연한 말이다. 안전하게 휴식하며 내가 나로서 편할 수 있는 집이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집을 유지하고 일상을 안정시킬 다양한 지원이 연결될 수 있도록 청소년자립지원관으로의 연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청소년이 자립지원관에 잘 연결되기 위해서는 그동안 청소년의 곁에서 주거 위기 상황을 확인하면서 대책 마련을 위해 고민했던 청소년쉼터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했다.(대부분 청소년자립지원관은 기관의 추천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런 과정에서 청소년쉼터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반가웠다. 이 분들 또한 그동안은 청소년 곁에서 대안 없이 걱정만 했다면, 이제 집을 구할 수 있게 되니 자립지원 연결이 가능해졌다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서를 써 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청소년 곁에서 협력할 수 있는 분들은 만나는 것은 늘 반갑고 감사하다.
여러 어려운 삶을 통과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청소년주거119의 지원을 통해서 시설과 지인의 집을 드나드는 불안정한 일상을 멈출 수는 있었지만, 집 외에도 필요한 지원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으니 정서적 취약함은 다시 이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어진 한 청소년이 다시 시설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쉽지 않았다. 청소년도 활동가들도 시설이 힘들어하며 보냈던 그 시간이 기억나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다른 대안을 찾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들어간 시설에서 오랜만에 밀도 깊은 관심과 따뜻한 밥에 마음이 편해졌기도 하고 위로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과 부딪히며 지내야 하는 날들은 결국 시설은 편한 내 집이 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어져 다시 나오겠다는 무거운 결심을 하게 된다.
잠시였지만 시설에 있는 동안 아침저녁으로 요동치는 이 청소년의 마음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그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함께 찾고, 끈질기게 그 곁을 함께 지키는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이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함께 발견하며 청소년의 판단을 응원하고 결정을 격려하는 활동가들이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함께 해결해 나갔고, 마음과 몸의 건강을 보살피는 순간이 이 청소년에게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활동가 역시 시설의 여러 한계를 분명히 알기에 오늘은 시설에서 살지만 내일 살 집을 같이 계획하자고 용기를 건네기도 했다. 그렇다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도 이런 활동가들이 곳곳에 존재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지원이 시설을 중심으로 설계된 이 현실에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지원 체계들이 재설계되기를 바란다. 자유와 보호가 다 보장되는 사회가 되기를, 현물이나 현금 지원을 넘어 곁이 되는 사람으로 가득 채워진 지역사회를 다시 꿈꾸게 된다.
하반기가 되니 지원금이 아슬아슬해졌다. 예상보다 많은 청소년을 만나게 되니 지원금이 점점 빡빡해진다. 우리보다 한해 먼저 청소년주거지원을 시작한 H이동쉼터와 지원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했다. 그곳도 주거가 필요한 이들이 있다면 아무런 조건도 묻지 않고 지원한다고 한다. 청소년의 상황에 맞게 필요한 지원을 연결하겠다는 마음뿐인 듯 보인다. 이곳의 주거지원은 청소년의 상황과 현실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지원이었다. 또한 우리가 늘 없는 지원금으로 허덕대는 걸 아니까 홈리스청소년을 위해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지원을 보태주는 E센터도 등장했다. 청소년의 일상을 챙기는 이들과 주거를 중심으로 삶에 대한 지원을 상의하다 보니 행정복지센터 동행하는 일, 다른 지원 단체를 연결하는 일, 이사를 지원하는 일 등 상황에 따라서 일을 나누기도 하고, 일상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짝꿍 조직을 만났다!! 같이 의논하니까 더 많은 지원이 가능해졌다. 이 든든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자립 준비가 된 이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자립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다음을 계획하며 지금 실행할 수 있는 것을 함께 하면서 말이다. 서른이 넘어 처음 자립하며 모든 것에 낯설어 여기저기 물으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던 나의 그 날들이 문득 생각났다. 청소년 곁에 있는 활동가들을 보며 참으로 안심이 됐다.
함께여서 가능했다.
청소년이 혼자 사니까… 혹시 뭐가 더 불편할까 봐 챙겨주는 윗집 어르신이 있었다. 밖에서 집 안이 보인다며 어느 날 가림막까지 직접 사 와서 설치해 주고, 주민센터에서 나눠줬다며 종량제봉투를 한 아름 안고 온 분이었다. ‘청소년이니 밤에 깨어 있고 그러면 시끄러워질 수 있지, 하지만 서로 불편하지 않게 좀 더 잘 지내보자’라고 얘기해 주는 옆집 사람도 있었다. 빈곤한 삶이 너무 고단하여 자녀 돌보기를 포기했던 부모가 청소년주거119에서 지원받게 된다고 했더니 이제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자녀의 삶을 같이 돌볼 용기를 갖게 되기도 했다. 가족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게 해서 아예 포기하게 만들었던 사회에서 가족 돌봄을 가능하게 한 사업이기도 했다.
수월하게 진행되면 의심이 들 정도로 안 된다는 얘기들이 더 많았던 날들이었다. 그런데도 어두운 밤 반딧불이처럼 반짝 만나는 사람들과 기관들이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니, 엄두도 못 내는 일이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힘을 보태어 일 년을 보낼 수 있었다. 혼자 다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아예 시작도 못 하게 된다.
“청소년의 집다운 집, 너무 고민하지 말고, 이젠 좀 그냥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라는 말을 던져줬던 제로님의 말(2022, 지원주택 컨퍼런스)처럼, 걱정하느라 보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이 사회에서 희생되어 살고 있는가. 우리가 모두 조금씩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청소년도 지역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상상을 시작할 수 있다.
누구보다 이 사업이 가능하게 했던 청소년들이 있다. 자신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협상도 협력도 하면서 이 시간을 같이 보낸 청소년들 덕분에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었다. 이 사업이 잘 되어서 세상이 청소년 주거권 보장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좀 더 애써보기도 한다는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부담스럽다며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들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보낸 우리가 함께 만들어 온 이날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청소년 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함께 애쓰며 서로 돌보는 지역사회는 필요하다. 그런 사회는 어디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만들고 있다. 함께 애쓴 모든 분께 감사하고 싶은 연말이다.
글_미혜
* <청소년주거119 사업>은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의 지원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