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후기][청소년주거119 현장르포] 네모의 주거 정착기

2025-07-10

● '내 집'은 아니었던 공간들

쏭쏭 : 안녕하세요. 오늘은 청소년이 원가정이나 시설이 아닌 곳에서 어떻게 집을 구하고 살아가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께, 네모님의 경험을 들려주신다고 하셨어요. 그럼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네모 : 안녕하세요. 17살, 네모입니다. 지금은 OO시에서 집을 구해 혼자 살고 있고, 3개월 정도 됐어요.

쏭쏭 : 벌써 세 달이 다 됐네요. 네모님은 탈가정 후 다양한 주거 경험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이렇게 혼자 살기 전에는 어떤 공간들을 거쳐 왔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네모 : 처음에는 아는 언니 집에서 몇 개월 살았어요. 그리고 다른 지인 집에서 며칠씩 지내고 그랬어요. 계속 그렇게 왔다 갔다하며 지냈죠. 그리고 진짜 잘 곳이 없을 땐 그냥 밖(거리)에서 지내거나 청소년 쉼터를 갔어요. 초반에는 쉼터를 잘 안 갔는데, 작년부터 자주 이용했어요. 그런데  일시쉼터는 오래 있을 수 없어서 많이 옮겨 다녔어요. A쉼터에서 지낼수 있는 기간이 끝나면 B쉼터로 가고. B쉼터도 자리가 꽉 찼다고 하면 밖(거리)에 있거나 친구 집에 있거나. 그런 식이었어요. 

쏭쏭 : 정말 많이 옮겨 다니셨네요. 그만큼 탈가정이라는 선택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네모님은 어떤 계기로 탈가정 하게 되셨어요?  

네모 : 처음 나오게 된 건 아빠의 폭력 때문에 집을 나오게 되었어요. 그땐 무서워서 집을 나갔다가도 아빠에게 전화오면 다시 들어가고…이런 생활이 반복되었어요. 혼자 지내고 싶기도 했어요. 가족들과 있을 땐 눈치를 계속 봤어요. 눈치를 보다 보면 이제 하루가 끝나가요. 저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어요.

쏭쏭 : 어떤 점에서 많이 눈치를 많이 보게 됐던 것 같아요? 

네모 : 저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아빠가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저희 집이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는데, 제가 돈을 벌면 지원이 끊긴다는 이야기를 자주하셨어요. 어떤 이야기인지 잘은 몰랐지만 무서우니 따랐어요. 늘 돈이 부족해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친구랑 밥 한 번 먹으면 끝나는 돈 밖에 없으니 친구들과 노는게 너무 스트레스 였어요. 돈에 대한 불안함이 지금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사람 표정을 진짜 많이 살펴요. 그래서 항상 아빠 표정을 살폈는데 늘 너무 어두우셨어요. ‘내가 뭐 잘못했나’, ‘기분 나쁜 일이 있으신건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늘 머리가 너무 복잡했어요. 계속 아빠 표정만 보고, 눈치를 봤죠. 

쏭쏭 :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이 그 상황을 감당했으니 더 답답했겠어요. 탈가정도 어렵지만 혼자 살아봐야겠다 결정하는 것도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한국사회에서 미성년자가 혼자 산다는건 상상하기 어렵기도 하니까요. 어떻게 집을 구해야 겠다는 결심하게 되셨어요? 

네모 :  친구 집에서 지낼 때는 솔직히 말하면 눈치 보였죠. 얹혀 사는 거니까 미안했어요. 일부러 밥도 사고 그랬죠. 그리고 제가 지냈던 대부분의 일시 쉼터는 7일 지내고 퇴소 했다가 2일 뒤에 들어올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근데 솔직히 말해서 7일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잖아요. 매일 옮겨다니는 게 힘들었어요. 짐도 다 들고 다녔어요. 운동 가방 크기 정도의 짐이었는데 무겁지만 두고 올 수는 없으니까 다 들고 다녔죠.

쏭쏭 : 맞아요. 처음에 집을 구했을 때 가방 하나가 짐의 전부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요. 그런데 단기나 중장기 청소년 쉼터는 좀 더 오래 지낼 수 있잖아요. 단기나 중장기 쉼터는 생각해보시진 않으셨어요?

네모 : 한 두 번 정도 가봤어요. 솔직히 답답했는데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었어요. 규칙을 지키는건 어렵지 않았어요. 이 정도면 잘 지낼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어느 날은 제가 갑자기 눈물이 나면서 숨이 가빠지더라고요.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오랫동안 지내는 게 내 편이 없는 상황에 둘러싸인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8명인가 같이 살았거든요.

쏭쏭 : 처음에 혼자 살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네모 : 걱정보다는 “너는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응원을 많이 받았어요. 오히려 그런 말이 더 필요했죠. 저는 혼자서도 워낙 걱정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 ‘내 집’을 찾기까지

쏭쏭 : 올 초에 네모님이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의 ‘청소년주거119 포스터’를 보고 직접 신청해주셨고, 그때부터 함께 집을 구하게 되었죠. 집을 구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는데요. 어떻게 지금 집을 구하셨는지, 과정에서 기억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네모 : 부동산가는게 무서웠어요. 미성년자라고 하면 무조건 거절당하거나 집주인을 잘못 만나서 다른 사고가 있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임대차’ 같은 말을 하나도 몰랐거든요. 그래서 너무 어려웠어요. 

쏭쏭 : 맞아요. 용어부터가 너무 어려워. 네모님 걱정대로 실제로 부동산에서 퇴짜도 많이 맞기도 했어요.

네모 : 앱으로 집을 찾아봤는데 너무 마음에 드는 집들이 있었어요. ‘여기서 지내면 난 무조건 잘 살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부동산에 연락을 했는데 미성년자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아니라 다른 성인이 와서 계약해야한다고 거절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미성년자를 받아주는 부동산은 찾을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 했어요. 내 사정을 솔직하게 얘기 해도 어떤 부동산이든 안 받아줄 것 같다. 절대로. 아니면 부동산에서는 된다고 해도 집주인분이 안 된다고 할 줄 알았어요. 그리고 막상 가보니 제가 생각했던 집과는 너무 다르게 생겨서 이게 뭐지? 이런 집도 있었어요.

쏭쏭 : 그렇게 막막한 마음이었군요. 처음 부동산 방문했던 날, 네모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게 기억나요. 미성년인 데다 넉넉하지 않은 예산으로 집을 구해야 해서 더 어렵게 느껴지셨을 것 같아요. 여러 부동산에 연락하고, 중개인을 만나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집을 구하게 되어 다행이었어요. 집 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 가운데서도 좋았던 점이 있었을까요? 

네모 : 솔직히 집 보러 다니는 게 저는 재밌었어요. 이번에는 어떤 집일까? 구조는 어떨까? 몇 층일까? 그런걸 생각하면 되게 설렜어요. 들어갈 때마다. 그리고 부동산 중개인이 좋으신 분이었던게 다행이었어요. 친절하셨고,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시려고 하는거 같았어요. 좋은 중개인을 찾아서 제가 그나마 덜 불안했던거 같아요.

쏭쏭 : 네모님 말씀처럼, 청소년이 집을 계약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보니, 신뢰할 수 있는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는 게 정말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모든 청소년이 운 좋게 좋은 중개인을 만나기만을 기대하는 건, 주거를 운에 맡기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져요. 청소년이 안전하게 집다운 집을 찾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과 실질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저는 네모님이 집보러 다니는걸 재미있어 하는줄 전혀 몰랐어요. 네모님은 티를 잘 안내시는거 같아요.(웃음) 

네모 : 좋아하면 티를 많이 안내요. 부끄러워서.

●  ‘내 집’에서의 3개월

쏭쏭 : 지금 집에 사신지 3개월째인데,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네모 : 제일 큰 건 잠을 잘 자게 됐다는 거에요. 옛날에는 자다 깨다를 엄청 했었어요. 예전에는 다 제가 얹혀 사는 집이었잖아요. 내 집이 아니고 남의 집이고, 같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이젠 나도 내 집에서 편하게 자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쏭쏭 : 잠을 잘 잔다는 건 자는 시간뿐 아니라 깨어 있는 시간도 좋아지는 일인거 같아요. 잠을 편하게 잘 때 조금 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게 되고, 관계에서도 좀 덜 예민해지고 그런거죠. 또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네모 : 예전에 씻는 걸 무서워했어요. 아빠가 제가 샤워를 할 때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며 소리치고 문을 막 두드리시고 그랬어요. 아직 샤워 중이라고 이야기해도 얼마나 오래 쓰는 거냐며 나오라고 욕을 하셨어요. 무서워서 아빠가 잠깐 나갔을 때만 빠르게 씻고 그랬었어요. 쉼터에서도 여러명이 쓰니까 빨리 나가야 될 것 같고, 누가 기다리는 것 같고 그래서 좀 그랬어요. 이제 혼자 있으니까 씻을 때 너무 편해요. 노래를 들으면서 엄청 여유 부리면서 1시간 동안 씻었어요. 가족들과 살 때는 절대 꿈꾸지 못하는 일이니까. 요새는 너무 좋아요. 내 마음대로 내 시간을 쓸 수 있다는게. 

쏭쏭 : 집에 친구를 초대하는 것도 좋아하신다고 했죠?

네모 : 네. 뭐라고 해야 되지? 약간 어깨가 으쓱 올라가요. 친구들이 놀러 오면은 “내 집이야” 라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아요. 친구들이 “집 초대해 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할 때, 정말 좋아요. 자존감이 올라가는 거 같아요. 

쏭쏭 : 네모님에게 내 집이 있다는 건 나를 으쓱하게 만드는 일이군요. 좋았던걸 많이 꼽아 주셨는데 힘들었던 순간도 있으셨을거 같아요. 

네모 :  처음에는 저도 힘들었어요. 세탁기 버튼을 눌렀는데 안돌아가서 일주일간 빨래도 못하고 그랬어요. 집에 바퀴벌레가 나왔을 때 너무 깜짝 놀랐어요. 진짜로 혼자 잡지도 못하고 소리만 지르고 있었어요. 근데 마침 옆에 친구가 있어서 잡아줬어요. 근데 만약에 혼자 있었으면 이걸 어떻게 했어야 됐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쏭쏭이 바퀴벌레 약을 갖다 줬잖아요. 그리고 나서는 아예 안보여요. 그리고 에어컨을틀었는데 청소가 안되어 있어서 이상한 시큼한 냄새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집주인에게 연락했죠. 그래서 청소해 주시는 분이 와서 청소해 주셔서 에어컨은 마무리가 되었어요. 원래 같으면 연락 못하고 어떡하지 이러고 있었을 텐데 냄새가 너무 심하니까 연락을 했죠. 그래도 사람은 누구나 경험을 해봐야 아는 거니까 처음부터 무서워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살아보는게 필요한거 같아요. 

쏭쏭 : 맞아요. 어렵지만 하나하나 헤쳐나가고 있는거 같아요. 전 방충망 사건이 기억이 나요. 방충망이 다 뚫려서 저희끼리 방충망 시트 사서 고생했지만 다 고쳤잖아요. 그러면서 집을 같이 챙기고, 꾸려가는 3개월을 보냈네요. 네모에게 이렇게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건 어떤 의미인 것 같아요?

네모 : 저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몰랐는데 손으로 뭘 하는걸 좋아하는 걸 알게 되었어요. 원래 제가 빨래 개는 걸 진짜 못하거든요. 근데 하다보니까 빨래 개는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전 빨래를 개는 걸 되게 귀찮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개는 방법을 아니까 좀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빨래하는 시간을 기다리게 됐어요. 그리고 세탁기 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1시간 동안 세탁기 돌아가는 걸 본 적도 있어요.

● ‘집다운 집’을 찾아가는 이들에게 / 사회에게

쏭쏭 : 이렇게 네모님은 자신의 집을 찾고 좋은게 많다고 하셨는데 혼자 사는 청소년이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사회나 제도가 바뀌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어떤게 있을까요?

네모 : 우선은 계약서를 볼 때 임대인, 임차인 이렇게 돼 있으니까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잖아요. 그런걸 잘 설명해 놓은 설명서라도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궁금한게 있으면 잘 물어보는 편이에요.  고지서나 집과 관련된 것은 쏭쏭에게 물어보고, 요리나 청소 같은거 모르는건 아는 언니들에게 물어봐요.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곳이 많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미성년자라는 이유 때문에 못한다, 하지 말아라, 안 된다 이런 말들이 너무 안타깝고 슬픈것 같아요. 제가 전입신고를 하거나 수급 분리 신청을 할 때 너무 어려웠거든요. 상황을 설명하고 증거 같은걸 내야 해서 법원도 다녀와야 했어요. 이 과정에서 힘들었던 과거도 다시 생각해야하고 왜 이렇게 까지 해야하는 거지?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쏭쏭 : 맞아요. 청소년에게 ‘금지’의 방식으로 특정 형태의 보호를 강요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부모에게 보호받는걸 전제로 지원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어서 부모가 보호자의 역할을 못하는 청소년들은 오히려 지원 시스템에서 배제되기 쉬운거 같아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네모님이 지금의 생활을 잘 유지하기 어떤 지원이 더 있었으면 좋을까요?

네모 : 저는 주변에서 안부를 자주 물어보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슨 일 없었어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물어보면 대답해 주는 청소년들이 많지 않을까요? 어떤 일이 생겼는데 막 꽁꽁 숨기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나쁜 상황에 휘말렸는데 나를 안 좋게 볼까 봐 무서워서 말을 못할 수도 있고.

쏭쏭 : 맞아요. 힘든 상황인데도 저희를 실망시킬까봐 말을 못하셨다는 청소년분이 떠올라요. 어떨 때는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 말을 못꺼내기도 하고. 그래서 안부를 물어봐 주는게 소중한거 같아요. 

네모 : 맞아요. 맞아요! 그런 경우 되게 많았어요.

쏭쏭 :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사회가 청소년에게 “안 돼”가 아니라 “같이 해보자”고 말하는 사회가 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네모님의 이야기가 청소년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께도, ‘집다운 집’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청소년주거119 사업>은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의 지원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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